그리스의 청초한 풀내음과 지중해의 색채를 담은 1964년 명반 “Mes Plus Belles Chansons Grecques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

데뷔 당시에는 그리스어로 노래하는 그리스 가수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보컬리스트로, 크로스오버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나나 무스꾸리. 1962년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나나 무스꾸리가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를 세계에 소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며, 음악적으로도 최고의 완성도를 선보인 1964년 명반 [MES PLUS BELLES CHANSONS GRECQUES -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 (Mes plus belles chansons grecques)

1962년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나나 무스꾸리는 이후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음
악만으로 구성된 음반을 기획한다. 나나 무스꾸리는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를 세계에 소개하
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했는데, 결국 이 기획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Theodorakis)와 함께 그리스 국민 작곡가로 추앙받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을 중심으
로, 1964년 \\'아름다운 그리스의 노래들(Mes plus belles chansons grecques)\\'을 발표한다. 당
시 나나 무스꾸리는 1962년 미국에서 재즈 가수로, 1963년 프랑스에서 거둔 대성공으로 스
타의 반열에 올라선 때였지만, 혈관 속을 흐르는 그리스인의 피는 나나 무스꾸리 역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대중음악으로서의 성공이었고, 나나 무스꾸리
가 만들고 싶었던 음반은 \\'조국 그리스의 정서를 담은 그리스어 음반\\'이었다. 물론 그리스어
로만 구성된 음반을 그리스 밖에서 만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는 제약과 위험이 있었지만, 1962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얻은 지명도를 무기로 나나 무스꾸
리와 프랑스 음반사 폰타나(Fontana)는 과감히 \\'그리스어 음반 제작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출시된 음반이 바로 1964년도 작품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이 음반의 성공은 이후 나나 무스꾸리가 그리스 어 노래
를 계속 부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은 물론, 나나 무스꾸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커
다란 기준이 된 음반이기도 하다. 이 음반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1967년 작품 \\'내 조
국의 노래(Chants de mon pays)\\' 역시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 조국의 노래\\'
같은 경우 발매연도인 1967년, 조국 그리스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 등 음악 외적인 상황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1964년 작품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은 1960년대 나나
무스꾸리의 행보를 결정짓는 중요한 음반이다.
1967년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연이은 군사 정부 등장은 그리스 현대사 가운데 가장 암울
한 시기로 기록된다. 이에 저항한 정치인들과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은 투옥과 감금, 또는
추방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나나 무스꾸리와 활동했던 작곡가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마
노스 하지다키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당시 나나 무스꾸리는 추방이나 망명자들 가운데 들
어있지는 않았지만 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조국 그리스의 정신을 담은 음악들을 주로 노래하
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 활동에 주력했던 나나 무스꾸리는 1964년 그리스 방문을 마지막으
로 약 3년 동안 그리스 땅을 밟지 않았는데, 1967년 군사 쿠데타 이후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20년이 지난 1984년에야
나나 무스꾸리는 꿈에 그리던 조국 방문을 이룰 수 있었으며, 1984년 당시 가졌던 공연은 \\'
헤로드 아티쿠스 공연 실황(Live at Herod Atticus)\\'이라는 이름의 음반으로 공개되었다. 또
한 이 공연 실황은 다시 공연 20주년이 되는 2004년에 영상물로도 공개되었다).
1964년도에 공개된 \\'그리스의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은 이후 1967년에 공개된 음반 \\'내 조
국의 노래(Chant du mon pay)\\'의 모체가 되기도 한 음반이다. 모두 열 두 곡을 담은 이 음
반에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이 여덟 곡, 그리고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작품이 네 곡 수록되어 있다. 사실상 그리스를 대표하는 국민 작곡가 두 사
람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그리스 대표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음반의
백미를 선정하자면 역시 \\'Manoula Mou(마눌라 무; 나의 어머니)\\'일 것이다. 원래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모음곡 \\'제목없는 이야기(Tale without a Name)\\'에 수록된 곡인데, 이것을 나
나 무스꾸리가 따로 떼어내 불러서 유명해진 곡이다. 애절한 멜로디로 국내외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LP 레코드 시절부터 올드 팬들에게는 숨겨진 명곡으로 알려
진 곡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리스 출신 아티스트 음악 가운데 우리 정
서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곡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곡 이외에도 그리스 가수들이라면 한번
쯤 불렀을 정도로 수많은 버전이 있는 \\'Hartino to fegaraki (하르티노 토 페가라끼; 종이달)
\\'와 \\'Ta pedia tou pirea(피레의 아이들 - 일요일은 참으세요)\\'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피
레의 아이들\\'은 멜리나 메르꾸리의 버전으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기억하는 곡이지만, 여
기서 나나 무스꾸리가 부른 버전을 통해 색다른 맛을 느끼는 것도 이 음반만이 제공하는 매
력이다. 이후 1967년도 음반 \\'내 조국의 노래\\'에 \\'Manoula Mou(마눌라 무; 나의 어머니)\\'를
비롯해 \\'Kathe trelo pedi(미친 젊은 여인)\\', \\'Hartino to fegaraki (하르티노 토 페가라끼; 종
이달)\\' 등 세 곡이 수록되었으며, 이후 이 두 장의 음반은 나나 무스꾸리의 1960년대를 이야
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중요한 자료들이 된다.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민요와 히트곡, 클래식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개
하는 데 앞장섰던 나나 무스꾸리.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의 모습은 단지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사회 사업과 자선 사업에 앞장서는 훈훈한 인간애를 지닌 따
스한 사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1993년 유네스코 친선 대사로, 이후 보스니아 난민 돕기
등 나나 무스꾸리가 앞장서 펼친 활동은 음악을 넘어 무스꾸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이런 선입관을 배제하고라도 음악적으로 최고의 완
성도를 선보인 명반이자 대가의 젊은 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거울이다. 이제 40년 가까
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은 나나 무스꾸리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나보자. 우리는 이제 나나
무스꾸리의 무공해 목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지중해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 사람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그들의 웃음과 눈물을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