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보다 더 흑인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금발의 싱어 송라이터 아나스타시아 소울을 기본으로 팝과 록, R&B, 댄스를 버무려낸 무정형의 음악 최근 몇 년 사이에 팝 음악계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디바(diva)’. 원 뜻 대로라면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여성 솔로 가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여야 할 것이지만 요즘에 와서는 이것이 여성 가수를 지칭하는 보통명사화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는 그만큼 팝 음악계에 쓸만한 여성 솔로 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말도 된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토니 브랙스턴 등으로 이어져 온 자타가 공인하는 디바들 이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신인 여가수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솔로 팝 아티스트만 놓고 보았을 때 확실한 여성 우위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아나스타시아란 이 신인 가수 역시도 이런 여성 우위 현상을 이어갈 실력있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실력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물론 그녀가 송라이팅 능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인데 지난해 데뷔 앨범을 낸 브라질 태생의 라틴 뮤직 아티스트와 철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인 그녀는 올해 초 ‘I’m Outta Love’란 싱글로 빌보드 댄스 차트 2위까지 올라 시선을 끌었고, 드디어 정식 데뷔 앨범을 들고 팝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비록 신인이긴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듣는 이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데 그것은 티나 터너와 아레사 프랭클린을 합쳐 놓은 듯한 독특한 목소리 때문이다. 보컬을 듣고 당연히 새로 나타난 신인 아티스트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렸을 것이 분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필자 역시도 그랬다) 그녀가 금발머리의 백인이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의 혼란은 음악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소울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R&B와 팝, 록, 댄스 등 다양한 양태의 장르를 뒤섞어낸 그녀의 음악에서는 어느 한 가지로 정형화해서 말하기 힘든 자유분방함이 배어나온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음악에다가 1970년대풍의 복고적 분위기 또한 가미되어 있는 그녀의 음악은 결코 세련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음악 스타일이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가 있다. 음악적 분위기와 보컬에서 신인답지 않은 능청스러움이 특징적인데 흑인 남성들이 대부분인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 가수를 비롯해 흑인 음악을 하는 축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처럼 완벽하게 목소리에서부터 흑인적인 필링을 소화해냈던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듯 하다. 비록 음악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독특한 목소리로 보나 전체적인 느낌으로 보나 ‘메이시 그레이의 화이트 버전’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나스타시아의 본명은 Anastacia Newkirk. 시카고 태생으로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의 손에서 뉴욕에서 자랐다고 한다. 나이트 클럽과 호텔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에서 일하던 배우였던 어머니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그녀는 어머니가 즐겨듣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엘튼 존의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다고 하는데 언니와 함께 뉴욕의 댄스 클럽 멤버가 된 그녀는 흑인 여성 랩 트리오 솔트 앤 페파의 뮤직 비디오 에서 댄서로 나서기도 했다.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몇 몇 프로듀서들로부터 가수 데뷔를 제의받기도 했던 그녀는 몬텔 조단과 세세 페니스톤(CeCe Penniston) 등과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키보디스트 O.G. Pearce의 프로듀스로 자작곡인 ‘One More Chance’-이번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를 레코딩하기도 했지만 음반 계약을 따내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은 1998년의 일. MTV의 일종의 신인 등용문 코너인 이란 프로그램에서 160명의 참가자 중 최종 결선에 오른 10명 안에 들면서였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명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 여성 힙 합 아티스트인페이스 에반스 등이 심사위원으로 나선 이 대회에서 그녀는 자작곡인 ‘Not That Kind’-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이기도 한-를 열창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 마이클 잭슨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꿈같은 일을 겪게 되고 메이저 음반사들로부터도 구애를 받게 된다. 마침내 지난해인 1999년 봄 그녀는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고 앨범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결과 탄생하게 된 것이 이 데뷔 앨범 “Not That Kind”다. 아나스타시아의 자작곡과 공동 작곡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번 앨범은 프로듀서와 송라이터들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셀린 디온의 주요 히트 앨범과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 코코 리범 “Just No Other Way”, 보이존의 ‘Different Beat’ 등을 프로듀스했던 릭 웨이크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또 4인조 남성 보컬 그룹 컬러 미 배드의 멤버로 제시카 심슨의 “Sweet Kisses”에 프로듀서 및 백 보컬리스트 등으로 참여하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샘 워터스는 머라이어 캐리, 엘튼 존, 아레사 프랭클린, 다이애나 로스, 제시카 심슨 등의 키보디스트, 엔지니어, 프로듀서 등으로 참여했던 루이스 비앙카니엘로와 함께 ‘I Ask Of You’ 등 네 개의 트랙을 공동으로 작곡하고 프로듀스했다(이 네 곡은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작곡한 것이다). 이 밖에도 보이존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엔 싱크의 앨범 등에 참여했던 칼 스터켄과 에반 로저스 콤비는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만든 ‘Same Old Story’ 등 두 곡을 프로듀스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앨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나스타시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정형성이다. 이는 곧 특정 장르로 구분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곡 한 곡 해부해가며 이건 무슨 장르고 이건 무슨 장르라는 식으로 구분하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은 별 의미도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뛰어난 리듬감인데 과거 그녀가 클럽 댄서였던 사실과 무관하지는 않은 듯 하다. 아나스타시아의 보컬은 중음역대에서 힘을 발휘하지만 군데 군데 내지르는 창법도 나름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첫 트랙으로 실린 ‘Not That Kind’에서부터 흑인적인 필링을 강하게 표출해내고 있는데 복고풍의 댄스 넘버 ‘I\\'m Outta Love’는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을 법한 노래다. 펑키한 감각이 가미된 ‘Made For Lovin\\' You’도 비슷한 느낌의 트랙. ‘Cowboys & Kisses’는 록적인 필링이 가미된 곡으로 릭 웨이크와 섀도우멘(The Sahdowmen)이 함께 프로듀스해냈다. 잔잔한 기타 연주가 특징적인 ‘Who\\'s Gonna Stop The Rain’, 현대적 감각의 세련된 리듬을 들려주는 ‘Love Is Alive’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음 파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마지막 트랙인 ‘Same Old Story’와 함께 칼 스터켄 에반 로저스 콤비가 프로듀스한 곡. 솔직히 말해 한국적인 취향의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팬들이 빠져들 만한 감미로운 목소리와 착착 감겨드는 멜로디를 지닌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호소력을 지닌 트랙들도 있다. 샘 워터스와 루이스 비앙카니엘로가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만들고 프로듀스한 ‘I Ask Of You’는 스케일이 큰 발라드 넘버로 우리 정서에도 잘 맞는 곡이다. 앨범에서는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One More Chance’는 팝적인 감각이 가미된 발라드 트랙으로 역시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트랙이다. 그 독특한 음악성으로 보아 분명 대중지향적인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나스타시아가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준 송라이터 및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것이다. 실력만 가지고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종적인 평가는 역시 대중들이 내리는 것이고 보면 그녀의 음악이 얻어낼 시장에서의 반응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