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연주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1959년 작 이전과 이후로! ” 수많은 재즈 비평가들은 일제히 그의 이 실험성 짙은 걸작을 비밥 이후 태동한 모던 재즈 사에 길이 남는 걸작으로 칭송했다. 팝 음악에서 비틀즈의 , 한국 대중음악에서 <들국화 1집>이라면 재즈에선 단연 마일스 데이비스의 였다.

코드(화성) 중심에서 스케일(음계) 중심의 연주로의 전환, 마일스는 다시 한번 재즈 연주의 신기원을 앨범을 통해 제시했다. 스케일 중심의 연주, 이름하여 모드(mod) 주법으로 앨범 전체를 꾸민 최초의 앨범은 었다.

당시까진 특정 음들이 조합된 만든 규격화 된 화성을 얼마만큼 화려하고 복잡하게 구사하느냐가 재즈 연주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현란하고 급격히 변하는 다양한 코드 구사는 연주자 입장에선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청중들은 본인의 귀를 의심해가며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이러다 보니 청중들은 재즈를 `듣는 것`이 아닌 `해독` 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현란한 코드로 가득찬 연주, 난 더 이상 그런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라며 앨범이 제작될 당시의 심경을 고백했던 마일스는 새로운 앨범을 구상하던 중 당시 재즈 피아니스트 조지 러셀(George Russel)이 제안했던 모드 주법을 떠올렸다.

모드는 1-2개의 코드안에서 다양한 음계를 활용해 연주를 하는 것이므로 코드에 자신의 연주를 맞출 필요가 없게 된다. 대신 하나의 코드 안에서 연주를 하려면 자칫 솔로가 지루해지므로 연주자는 다양한 보다 다양한 선율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수다. 다시 말해 모드는 연주인이 정해진 코드에 솔로가 제한당하지 않다 보니 멜로디, 즉 선율 중심의 연주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이러한 마일스의 컨셉은 앨범을 통해 현실화됐다. 1959년 3월, 콜럼비아 스튜디오에 모인 그의 섹스텟은 바로 앨범 녹음 몇 시간전 까지도 이런 그의 의도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만 저장 되 있던 아이디어는 바로 녹음이 들어 가기 직전 얘기되고 그의 사이드 맨들은 이런 그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모든 녹음은 그 어떤 리허설도 없이 이루어졌다. 재 녹음도, 어떤 소리의 가감도 없이 한 방에 가는 원 테이크(One take) 방식이었음은 분명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와 존 콜트레인, 그리고 알토 색스폰의 캐논볼 애덜리, 피아노의 빌 에반스(윈튼 켈리도 참여), 드럼에 지미 콥, 그리고 베이스에 폴 체임버스로 구성된 이 섹스텟은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항해를 준비하는 선원들이었다. 가령 마일스가 `이번 곡은 F코드로 시작한다`고 하면 하나의 코드를 두고 마일스가 트럼펫으로 주제 선율을 제시하면 연달아 사이드 맨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솔로 시간에 각자의 솔로를 구사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에 담긴 5곡의 연주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창조됐다. 모드 연주의 진수라 할 `So what`은 16마디를 단일 스케일로 시작해 다음은 8마디씩 스케일을 변해가며 트럼펫, 테너 색스폰, 알토 색스폰, 피아노 순으로 솔로가 이어진다. 인상적인 베이스 라인으로 친숙해 연주인들이 즐겨 커버하는 `All blues`는 6/8박자의 12마디블루스 스케일을 사용한다. 단 3개의 코드 진행되는 멤버들의 변화무상한 솔로는 가히 재즈 즉흥연주 역사의 정점이다.

다른 사이드맨이 솔로를 구사할 동안은 마일스는 일체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가령 마일스의 솔로가 끝난 다음 어김없이 등장하는 존 콜트레인 화려한 테너 색스폰 솔로엔 마일스는 빠져있다. 다시 말해 그의 트럼펫은 여백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그 동안 마일스는 담배를 물고 또 다른 연주 아이디어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이드 맨들의 연주 기량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도록 자신은 억지로 연주하지 않는 것, 그가 늘 내세웠던 여백의 미학은 앨범 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사이드 맨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해주는 그의 연주 방식은 <`Round About Midnight>에선 존 콜트레인을, 에선 구수하고 달콤한 알토 색스폰의 달인 캐논볼 애덜리와, 클래식에 버금가는 서정성의 극치를 재즈 즉흥연주로 창조한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를 세상에 알렸다. 마일스가 뛰어난 즉흥 연주자를 넘어 사이드 맨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전체 연주에서 최대의 감흥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음악 감독`임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앨범이 나왔을 당시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빈약한 연주`라며 혹평을 일삼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는 재즈뿐 아닌 60-70년대 록 음악에도 뚜렷한 종적을 남긴 걸작으로 칭송됐다. 최소의 코드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데 공감했던 루 리드와 존 케일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런 `최소주의`에 입각한 발칙한 실험 록 연주를 세상에 내 놓았다. 60년대 싸이키델릭 록의 주역이었던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제리 가르시아(Gerry Garcia)나 블루스 록의 전설 올맨 브라더스(Allman Brothers)의 듀언 올맨(Duane Allman)에게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영향은 감지된다. 이들이 단일 코드로 무려 30분이 넘는 기타 솔로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통해 제시된 `선울 중심의 즉흥 연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래서일까? 지난 2003년에 겨울에 발간된 록 전문지 `롤링스톤(Rollingstones)` 은 특집호로 `록 음악 500대 명반`을 다루며 마일스 데이비스의 를 12위에 올려놨다. 즉, 그가 있었기에 그레이트풀 데드도, 벨벳 언더그라운드도, 올맨 브라더스도 가능했다는 얘기이다. 다른 재즈 뮤지션들은 몰라도 마일스 데이비스 만큼은 공히 주류 대중 음악인 록 진영에서도 알아 모신다는 증거이다.

화려한 코드 구사와 현란한 솔로가 중심이 되었던 재즈 연주는 이후 단순한 코드로도 보다 다양한 즉흥 선율을 구사하는 연주로 흐르게 되었다. 가 제시한 모드 스타일은 청중들은 비록 아티스트가 연주에서 의도한 모든 것은 이해할 순 없어도 코드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해하는 식의 청취상의 번잡한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더라도 술술 받아들여지는 재즈 연주!(대표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영향을 받은 팻 메스니가 그렇다)상업적으로도 성공해 현재까지도 3백 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는 평론가들도 대중들도 공히 인정하는 앨범으로 항상 선두를 차지한다.

여전히 그의 음악은 전진해가고 있었다. 마일스의 음악은 차츰 아티스트 사이에서 인정 받기 보단 대중들의 귀에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들려질까에 관심이 가고 있었다. 대중이 관심을 갖는 곳으로 마일스의 관심 역시 향하고 있었고 그의 재즈 연주는 어느새 파란과 혁명으로 대변되는 60년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