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말 팝 음악계를 엄청난 폭발력으로 휩쓸었던 라틴 팝의 열풍은 그 뇌관 역할을 했던 리키 마틴을 필두로 많은 라틴 음악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이들은 기존의 라틴 음악에 팝적인 멜로디나 R&B 리듬을 버무려 넣은 뒤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노래를 함으로써 미국 내 히스패닉계와 남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들의 지지 기반을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팝 차트를 점령하고 그래미상에서 라틴 그래미가 별도로 생겨나게 만들 만큼 대단한 파괴력을 지녔던 이 라틴 팝 바람도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며 마치 육지에 상륙한 태풍처럼 급격히 그 힘을 잃고 말았다. 제니퍼 로페즈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의 스타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샤키라라는 새 별이 나타났지만 이제 더 이상 라틴 팝이 시장을 주도해나가는 키워드가 되기는 힘든 듯이 보인다. 다시 말해 유행에 편승해 \\'라틴\\'이라는 양념만 끼워넣으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결국 \\'라틴 팝 군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아티스트 개인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각개 약진이 필요한 시기인 셈이다. 그럼 과연 \\'아티스트의 역량\\'이란 무엇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수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인 노래 실력이다. 눈길을 끄는 외모나 신체 조건 즉 섹스 어필이 성공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는 될 수 있지만 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는 필요충분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팝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라틴 팝 열풍이 만들어낸 \\'크로스오버 스타\\' 중의 한 사람인 마크 앤소니는 그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해 22세기 팝 시장에서의 각개 약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아티스트 중의 하나다. 게다가 대부분의 라틴 팝 스타들이 열정적인 라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강한 섹스 어필을 발산했던데 비해 1999년 영어 데뷔 앨범 [Marc Anthony]를 통해 들려준 마크 앤소니의 음악은 열정적이기보다는 이지적인 동시에 로맨틱하다. 살사 전문 가수 즉 살세로(Salsero)인 자신의 색깔을 가미해 살사와 팝을 크로스오버시키고 여기에 발라드 넘버를 대거 집어넣었던 것도 다른 라틴 팝 스타들과 차별화되는 측면이다. 1969년 9월 16일 뉴욕시에서 푸에르토리코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마크 앤소니의 본명은 마르코 안토니오 무니즈(Marco Antonio Muniz). 라틴 포크 가수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가 멕시코의 유명한 뮤지션의 이름을 따 지어준 이름이다. 지금의 영어식 이름인 마크 앤소니는 처음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바꾼 것. 10대 후반 남미의 유명한 밴드 메누도나 라틴 래스컬스 등의 백 보컬을 맡는가 하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메누도에게 제공하기도 했던 그는 유명한 DJ 겸 프로듀서 리틀 루이 베가(Little Louie Vega)와 함께 댄스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고(그가 처음엔 댄스 가수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것) 그의 소개로 전설적 살사 스타인 퍼커션 주자 티토 푸엔테 등과 함께 [When The Night Is Over] 앨범에 참여해 \\'Ride On The Rhythm\\'을 불러 빌보드 \\'Tropical Chart\\' 정상에 올려놓는다. 파나마 출신 살사 음악의 거장 루벤 블레이즈와 함께 레코딩을 하고 투어를 갖던 그는 스페인어 살사 앨범 [Otra Nota(1992)]를 내놓아 빅 히트를 기록한다. 빌보드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고 1995년 2집 [Todo A Su Tiempo]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빌보드의 \\'최우수 트로피칼 아티스트\\'를 1995년과 1996년에 연속 수상한다. 1997년엔 3집 [Contra La Corriente]로 그래미상 \\'Best Tropical Latin Performance\\'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가수 활동과 함께 연기 활동도 펼쳐 \\"Hackers(1995)\\", \\"Big Night(1996)\\", \\"The Substitute(1996)\\", \\"Bringing Out The Dead(1999)\\"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폴 사이먼의 뮤지컬 \\"The Capeman\\"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 앨범 [Mended]는 라틴 팝 붐을 타고 첫 번째 영어 앨범 [Marc Anthony]를 발표해 살사풍의 \\'I Need To Know\\'와 달콤한 발라드 \\'You Sang To Me\\' 등을 히트시킨 뒤 2001년 가을 네 번째 스페인어 살사 앨범 [Libre]를 발표했던 마크 앤소니가 발표한 두 번째 영어 앨범이다. 원래는 [Libre]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될 계획으로 8월에 첫 싱글 \\'Tragedy\\'를 내놓았다가 마침 터진 9.11 뉴욕 테러 사건 때문에 발매가 늦춰진 우여곡절을 겪었다. \\'비극\\'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차질이 생겼던 것. 결국 싱글을 \\'I Need You\\'로 바꿔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전작에서 선보였던 마크 앤소니 음악의 특징은 한 마디로 라틴 리듬이 살짝 가미된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팝이었는데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 당시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마크 앤소니의 빅 히트곡 \\'I Need To Know\\'를 빚어냈던 코리 루니(Cory Rooney)-머라이어 캐리와 제니퍼 로페즈, 데스티니스 차일드, 제시카 심슨 등의 앨범에 참여했던 잘 나가는 프로듀서-가 이번에도 역시 참여했기 때문인 듯. 약간의 차이라면 발라드 곡보다는 업템포의 곡들이 다소 비중이 커진 느낌이고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으로 채색되어 있는 점. 어쩌면 새로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은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헤어진 여자 친구 데비 로사도(Debbie Rosado)와의 사이에서 얻은 여덟살짜리 딸 아리아나(Arianna Muniz)를 둔 그는 모델 출신 데이아나라 토레스(Dayanara Torres)와 새로 가정을 꾸렸다). 게다가 이번에도 역시 마크 앤소니의 송라이터 및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또 한 사람 눈여겨 볼 인물은 송라이터로 비중있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카라 디오구아르디(Kara Dioguardi). 셀린 디온과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제시카 심슨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류 송라이터다.